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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의 '아이들'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했던 기간에 '독일군 사생아'로 태어났던 프랑스인들이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 정식으로 독일 정부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프랑스와 독일 양국 정부가 모두 묻어두고 있었던 '저주받은 아이들'은 3월 5일 독일 내무부의 공식 인정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환갑 넘기고 처음 공론화
AFP, AP 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독일군 사생아 bâtards de Boches(경멸적)'로 불리는 이들은 전쟁 중 독일군이 장기 주둔했던 프랑스 북서부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전쟁 중 혹은 후에 태어나 공공연하게 저주를 받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전쟁에 패해 퇴각하는 독일군 아버지가 데려갈 수도 없었고, 남아 있는 어머니도 '금지된 사랑'을 이유로 멸시를 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머니 대신 키워주던 할머니도 '적군의 아이'라며 저주하기도 했다. 심리적 멸시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짐승 취급을 받았던 이들도 많았고, 각종 정신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무시당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 기념식이 2004년 6월 3일 자끄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필두로 제 2차 세계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동참했던 연합국은 물론, 패전국인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참석하여 성대하게 거행되었지만, '저주받은 아이들'은 늘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프랑스, 독일 모두 침묵 일관
하지만 독일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프랑스 언론인 Jean-Paul Picaper와 독일 작가 루드비히 노르쯔, 그리고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는 몇몇 프랑스인들의 끈질긴 노력에 힘입어 2006년 6월에 처음으로 공식 모임을 갖게 되었다(본지 2006년 6월 9일자 보도). 당시 150명 규모였던 이 모임은 이제 231명의 협회로 커졌고, 전체 독일군 사생아들은 2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생아들에 대한 언론의 지속적인 조사와 보도, 그리고 프랑스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무장관의 요청에 대해 독일 정부는 내무부 대변인 발표로 '전쟁의 아이들'의 어려운 운명을 공식 인정하게 되었다. 프랑스 외무부는 더 이상 숨겨 둘 수 없으며,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최소한 상징적으로라도 인정해줄 것을 원한다며 수 차례 베를린에 요청했다고 한다.
협회 회장인 쟈닌 니부와-세베스트르는 독일 정부의 조치에 대해 환영 의사를 표했다. 일정한 행정 절차를 거치면 독일 국적 취득도 가능하다. 관련 피해자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아버지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독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오랜 기간 아버지를 찾아 나섰던 프랑스인 윌리암 팔귀에르씨는 이미 서류를 다 준비했으며, 이중 국적을 받으면 독일인으로서 독일에서 사촌들과 함께 살 예정이라고 밝혔다.
독일정부, 독일군 사생아 공식 인정
2009-03-09 오후 12:25:51 게재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했던 기간에 ‘사생아’로 태어났던 프랑스인들이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 정식으로 독일 정부의 인정을 받게됐다. 프랑스와 독일 양국 정부가 모두 묻어두고 있었던 ‘저주받은 아이들’은 독일 내무부의 공식 인정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AFP, AP 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독일군 사생아’로 불리는 이들은 사생아들에 대한 언론의 지속적인 조사와 보도, 그리고 프랑스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무장관의 요청에 따라 독일 정부는 지난 5일 내무부 대변인 발표로 ‘전쟁의 아이들’의 어려운 운명을 공식 인정했다. 독일 정부는 일정한 행정 절차를 거치면 독일 국적 취득도 가능토록 조치를 취했다. 이는 독일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프랑스 언론인 장 폴과 독일 작가 루드비히 노르쯔, 그리고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는 몇몇 프랑스인들의 끈질긴 노력에 힘입은 것이다.
파리 정종엽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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